시결

신인상

빨강 그다음에는

이원재

어느새 너와 나는 반만년, 최후까지 함께했던 기억은 공룡처럼 어떤 건 이름이 없고 어떤 건 완전히 굳어 수줍게 적나라하다
누구도 기다리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안부 사이, 얕게 차오른 경멸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까불었다 제 누이와 입 맞추는 시골 아이의 철없는 물장구처럼

어느새 너와 나는 빨강 그다음,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모를 무신경함을 겸연쩍게 쥐여주며 앞발을 내밀었다 아, 어쩌지! 발은 손을 대신할 수 없는데!
발과 발 상호 간의 경례, 올리고 나니 넌 그새를 못 참고 대충 큰절을 올린다 무릎께 오는 너의 눈길이 어딘가 슬퍼 보이는 건 어쩌면 내 탓일지도 모른다

어느새 너와 나는 사진 없는 액자, 액자란 사진이나 그림 따위를 담아둬야 하는데 네가 사진 할래? 아님 내가 할까? 아니 난 못 할래 하며 못을 박았다
아직도 못 뺐다 넌 못했다 나도 못했고 그러니까 우린 모두 서투른 대장장이였던 셈

어느새 너와 내가 우리가 되지 못하는 지금, 빨강 그다음엔 누가 또는 무엇이 와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
잠깐 숨 돌릴 틈도 없이 넌 벌써 어디 가고 없다
적막 뒤에 이어지는 폭발, 자명했으니, 멎어야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누른다 어떻게든 참아야 산다

이원재
2024년 《시결》로 등단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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