신인상
믿거나 말거나
이원재
만석의 커피 트레이를 든 채 계단을 오를 때면 모든 걸 와장창 쏟아버리는 상상을 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면서도 쏟은 적 역시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
좋아, 누군가 내 생에 개입해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 아주 곤욕인 일 따위를 막아주고 있는 거라면 감사 정도는 표할 수 있으니 한번 얼굴이라도 맞대주쇼, 하고 싶지만 그런 분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나타날 수 없을 것이다 수억 수조의 우글거리는, 말 그대로 억조창생 앞에 일일이 나타난다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도 보지 못할 것이다
이것이 위안이 되는 까닭은 설령 있다 하더라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, 그러니 있다고 믿어도 그만이요 없다고 믿어도 그만인 셈 가만 생각해보면 짐승과 우리가 다른 점은 이를 두고 말하는 건가 싶다 전능을 믿거나 말거나 하는 힘, 하찮지만 그 무엇보다 숭고한
이원재
2024년 《시결》로 등단.